[제작기] 수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01

*이 포스트는 부산시 수영구에서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인 미닝오브가 낯선 지역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콘텐츠를 제작하는지… 뭐 하나 꾸미지 않은 날것의 얘기들을 슥슥 털어봅니다. 이 포스팅의 목표는 너무 힘들이지 않고 주절주절 끊임없이 말하기…!

0. 시작
부산의 수영으로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어떤 꿈을 꾸었다.
꿈은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할머니가 계셨고. 할머니는 계속해서 내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나는 미리 싸둔 짐을 점검하느라 할머니가 자꾸만 질문을 하는 것이 귀찮아 퉁명스런 얼굴을 한 채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특유의 그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대답을 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말했다. 할머니, 저 부산에 가요. 말씀드렸잖아요. 부산에 간다고.
할머니는 몽롱하게 대답했다. 부산에 간다꼬?
할머니의 몽롱한 말과 고집스러운 눈을 보며 꿈속의 나는 기억해냈다. 맞아. 할머니는 ‘부산 사람’이지. 제주도에서 태어나, 이방인으로 가득가득 차 혼란스럽고 아름다웠던 부산에 홀로 이주해 반이 조금 넘는 평생을 살았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할머니는 내 짐가방의 지퍼를 대신 닫아주며 말했다. 거기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내한테, 일이 많았다. 니도 알제?
나는 무어라고 대답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은데, 곧바로 잠에서 깨버렸기 때문에 그 뒤에 우리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꿈은 끝이 났다.
이렇게 어쩌다보니, 부산으로 향하는 첫날의 기억은 나의 할머니이자, 김춘화라는 여자의 말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말한다. 그곳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영화의 오프닝과 같은 시작이다.

1. 출발
지금에야 찬찬히 이날을 곱씹어보며, 이런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지만, 사실 막상 이 꿈을 꾸고 난 직후에는 이에 대해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저 일어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딸기의 집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 집에서 적어도 6시 20분에는 나가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새벽 5시 반 알람에 맞춰 일어난 후 신속하게 씻고 나와 혹시 빠진 짐이 없는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차피 이미 잡혀 있는 서울 촬영 때문에, 이번에 내려가도 3일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 (물론 그런 후에 다시 부산에 가야겠지만ㅠㅠ) 그러다보니, 막상 들고가야 할 옷가지나 생활 용품이 그리 많지 않다. 미니 트렁크에 옷가지를 쑤셔넣고 간단한 빈백 하나 메니 끝! 엄청 간소하다.
그렇게 가벼운 몸으로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데, 키위가 카톡으로 SOS를 날린다. ‘짐이 너무너무 많으니 미리 도착하면 짐 내리는 것을 도와 달라’ (…) 그리고 딸기 또한 짐이 너무 많아서 도우러 내려가기가 어렵다는 말을 전해온다. 나 너무 땡보인 걸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안그래도 일찍 출발했으니 가서 짐 내리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키위는 집이 사무실에서 가깝다는 죄로, 사무실에 있던 다양한 식기들과 간단한 주방용품, 그리고 장비들을 챙겨오는 임무를 맡게 됐다. 딸기는 자취를 한다는 죄로, 집에 있는 다양한 생활 용품들을 챙겨오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짐을 받아 딸기의 차에 억지로 쑤셔넣어보니 이런 모양새가 됐다.
짐을 다 싣고 이제 출-발! 하려고 하는데, 아직 태풍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것인지 빗줄기가 굵고 세차다. 하지만 태풍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은 안심하며 출발! (우리는 남쪽으로 가니까) 
출발할 때, 옆차 앞차들이 너무 바짝 대놔서 나가는데에 진땀을 쫙 빼는 소소한(?) 일이 있었다. 이전에 장편 영화를 찍을 때 급히 촬영을 가려다가 출발과 함께 주차장에서 옆차를 긁었던 일이 있었던지라, 이 일은 우리에게 긴장감을 뽝 주기에 충분했다. 조심조심 가자, 우리… 안전 최고…!
다행히도, 일기예보의 말은 정확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진한 먹구름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이내 하늘이 매우 맑아졌던 것이다. 걱정했던 것만큼 차가 많이 밀리지도 않았고 (아무래도 휴가철이었는데), 한 두 시간 운전하고 휴게소에서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샀다. 개인적으로 ‘커피 수혈’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데, 이거야말로 진정한 수혈… 밥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중간에 키위가 딸기 대신 운전하는 시간을 갖고… 나는 뒤에서 두 사람의 보좌를 해주는 역할을 맡았건만 그만 아주 잠깐 졸기도 하며… 그렇게 부산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광안리 바다, 그것도 완전 핫플레이스 안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먼저 짐을 풀었다. 한달살이 할 집을 이곳저곳 많이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수요가 있는 곳들이 바다에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단기임대 집들이 다 이쪽에 몰려 있었다. 당시에는 진짜 엄—–청 비싸게 주고 방을 빌렸다고 생각했는데, 관리소장님이 얼마에 빌렸냐고 슬쩍 물어보시길래 가격을 말했더니 진짜 놀라셨다. “엄청 싸게주고 빌렸네! 잘했네!” 그 말을 듣고 ‘이거 잘하는 짓인가…’하며 꽁기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잘 빌린 거구나! (귀 얇음)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숨쉴틈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각자의 일을 위해 흩어졌다. 14일 서울 촬영을 위해 금방 다시 올라갔다 와야 했기에, 내려왔을 때 최대한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다음 날 바로 수영의방 웹진 관련 인터뷰 일정이 잡혀있어서, 키위는 인터뷰이 자택 근처로 답사를 나갔다. 나와 딸기는 부동산에 들러 단기임대 계약을 하고 오피스텔 관리소에 주차등록을 하고, 다 챙겨오지 못한 생필품을 사와야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번 출장에서 우리가 한가지 마음 먹은 것이 있었다. 바로 ‘엥겔 지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것! 미닝오브와 일해본 분들은 아마 모두가 알고 계실 것이지만… 우리 팀은 먹는 것 만큼은 진심이요, 식비를 아낌없이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고, 이미 30대가 넘은 딸들에게 아직도 ‘아무거나 이상한 거 먹지 마라’ 라는 우리 어머니들의 당부를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해 우리는 작전을 짰다. 사먹지 말고 해먹기. 그리고 조금이라도 건강한 걸로 먹기.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임실치즈피자 테이크 아웃하면 5000천원 할인’이라는 플랜카드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지만, 진짜 영화처럼 때마침 미리 배달을 주문해놓았던 햇반이 도착했고, 결국 ‘해먹자’ 자아가 승리의 패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출장 첫날의 밤이 저문다…
토요일부터 ‘넌 일하러 온 것임’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밥먹고 산책하고 돌아와서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딸기는 이 오피스텔이 지금까지 우리가 묵었던 숙소 중에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매우 들떠하며 기뻐해 나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온 숙소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며 (a.k.a 양구의 그림자 사건 – 촬영 답사를 위해 양구에 가서 숲속에 있는 펜션을 싼 값에 빌렸다가 울면서 야반도주한 사건. 물론 돈은 냈음) 아아 우리는 회사인데 왜이렇게 맨날 자본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반문하며 잠이 들었다. 돈 아주 많이 벌고 싶다… 중얼…
그리고 다음날, 이제 본격 출장 다운 일과를 보내게 된다. (나중에 대참사가 일어남)

(다음화 예고)
제신적인 장소를 찾던 우리는, 금련산 꼭대기에서 동굴에 있는 불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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