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기록] ep1.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기록을 남긴다면

(친)할머니의 생애기록집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나의 이 바램이 설사 엄마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지,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어쩜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냐며 기뻐했다. ‘괜찮으신가 보다’ 하고 안도하려 할 때, 얼핏 스치는 엄마의 오묘한 표정을 본 것만 같았다. 할머니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상처가 한 순간 엄마를 찌른 것 같다고, 뒤로 이어진 침묵 속에서 생각했다.

그에 반해 아빠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계신 듯 했다. 곧장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딸이 어머니 자서전을 만들겠다고 했다며 자랑을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조된 기쁨들. 비용은 모두 우리가 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도 돌아왔다. 그동안 할머니에게 무엇이든 얻어 가기만 했는데, 너를 통해서 그 빚을 갚게 되었다며 아빠는 말을 이었다. 그 기쁨을 통해 형용되는 아름다운 말들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찌를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계신 듯 했다.

그렇게 이어진 할머니의 생애 기록 작업. 그것은 할머니 한 개인에게 커다란 이벤트였음이 틀림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반추하는 작업에서, 그녀는 자꾸만 ‘이런 얘길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었는데’라는 문장을 라임처럼 붙였다. 자기 삶에 대해 할 말이 없다던 그녀는, 어떻게 그 수많은 문장을 품고 살았는지 깜짝 놀랄 정도로 한 순간 한 순간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남편이 된 낯선 남자만 믿고 고향을 떠났던 날, 배에서 내려 어두운 항구에서 보따리를 들고 갈 곳 없이 오도카니 서 있었을 때의 심정 등은 60년 세월이 지나서도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 기억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 그 세월이 무수히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 그것을 물어봐 주는 이가 멀게만 느껴졌던 나의 손녀라는 것 등등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생 부정적인 말만 해오시던 할머니는, 생애 기록 작업을 할 때 ‘좋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우리가 ‘자서전’에 대해 기대하는 효능들, 자서전에 관련된 논문 (-노인의 정서적 치유와 자서전의 상관관계 등의 제목이 붙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 효과를 그대로 누리시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그 동안 자신의 고통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할아버지의 동생 네 명을 자식처럼 돌봐야 했고, 그 인고의 노력은 그들의 도둑질로 끝이 났고, 할아버지가 데려오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매일매일 술상을 바쳐야 했고, 그럼에도 무식하다며 평생 무시당했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에서는 ‘독한 년’으로 새겨졌다.

췌장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는, 임종 앞에서 자신의 아내를 증오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이 독한 년’ 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 말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깨서 가슴을 탕탕 칠 정도로 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말을 남겼는지는 할머니의 세상에 남겨진 미스테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그 미스테리를 품은 채 자신의 선명하고 확고한 불행에 노출되어, 며느리라는 타인을 계속해서 상처 입혔다.

평생 돈 때문에 고생을 했고 남편에게 무시를 당했던 할머니에게 돈은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강인한 생활력으로 돈을 모으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그 모아놓은 돈을 자꾸만 가져가는, 자존감 약탈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미웠을거다. 모든 게 미웠을거다. 그 미움이 결코 아들을 향하면 안된다는, 거의 주문과도 같은 세뇌 속에서 미움은 며느리에게 이관되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여기엔 ‘이해’라는 것이 자리잡을 틈도 사라진다. 누가 누구를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끼어들 틈이 사라진다. 또렷한 현상과 실질적인 관계와 지워지지 않는 감정만이 남는다.

할머니의 자서전인 생애기록집이 완성되었을 때, 엄마가 이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나를 바짝 긴장하게 했다. 이 기록서가 엄마에게 할머니를 이해하라는 무언의 강요로 받아들여지면 어떡하지. 결과는 때때로, 자주, 의도와 다르게 흐르기 마련이니까.

자서전은 정말 무해할까.

다른 자서전 회사에서 대필 작가로 일했을 때, 처음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되어 당황하곤 했다. 자서전 대필 작가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 순수해보이는 행위가 어떻게 그 순수성을 잃어가는지, 오로지 1인칭 시점에서 얘기하는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찌르고 상처 입힐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왕의 곁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객관적인 역사를 편찬했던 사관의 심정으로 한 가정의 역사를 기록할 때도 있었다. 그 누구도 열람할 수 없었던 사관의 기록과는 달리, 내가 남기게 되는 이 기록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그것이 때때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자서전에 담긴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며 이에 대응하는 책을 나도 만들겠다는 전화가 걸려오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생애사를 기록할 때 쓰는 계약서에는 이러한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이 기록물은 내용의 진위에 대해 어떤 보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록의 행위에는 항상 질문이 따른다.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서전이 필요한가. 그 기록이 세상에 필요한가.

이 어려운 질문에, 엄마는 나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는 것으로 답했다. 엄마의 손에는 20년 전, 60대의 할머니가 친구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이 사진을 할머니의 옷장 한구석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이 사진을 들고 온 이유에 대해 엄마는 ‘할머니가 웃고 있는 다른 사진이 없어서’ 라고 말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생애기록집을 보고, 이 책 안에 할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할머니의 삶에 대한 문장들을 읽다가 문득, 웃고 있는 사진이 없다라는 걸 발견했다고 했다. 할머니 집의 다른 앨범들을 들춰보았을 때도, 웃는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옷장 속에서 이 사진 한 장을 발견해 들고 왔다고 했다. 왠지 울컥해서 가져왔어. 라고 엄마는 말했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홀로 돈을 벌기 위해 제주도 귤을 따러, 농사일을 도우러 다니던 때였다. 노동의 고단함으로 살이 쪽 빠진 할머니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을 짓고,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 곁에 서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생애기록집을 보고, 남편이 죽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던 여자의 마음을 처음 생각해봤다고 했다.

타인의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평생 미워했던 한 사람이, 복잡하고 입체적인 한 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우리는 뭐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당신도 결국엔 역사에 휘말린 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그 분노와 그 서글픔과 그 안도감. 나를 미워하던, 내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결국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너무 쉽게 ‘용서’라는 단어를 얘기하고 싶진 않다.

엄마는 아마도 평생, 할머니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할머니가 절대로 엄마에게 용서를 빌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생애기록집을 보고 그녀가 사진 속에서 웃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엄마였고, 그것이 마음에 걸려 종국엔 웃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해 자신의 가방에 넣어온 것도 엄마였다. 나는 아직도 이에 대해 설명할 어떤 단어나 문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아는 것 만으로도 덜어지는 미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그 ‘앎’을 할머니에게도 전하고 싶다. 우리 엄마의 생애기록집, 엄마의 기록서를 만들어 할머니 손에도 쥐어주는 것. 당신의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셔야 한다고 전달하는 것. 그것이 그 앎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일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는 건, 태생적으로 무해하고 순수하고 선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처받고 상처 입히는 보통의 사람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온 세계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보통의 삶’일 것이다. 이 보통의 삶에 엮여 있는 수많은 관계와 감정과 인과를 정리하여 ‘놓아두는 작업’이 생애기록집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통한 앎, 그리고 그를 통해 아주 조금씩 덜어지는 미움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2021.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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