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추억 담은 ‘종로의 풍경들’ 수업 현장_내 손 안의 서울

“여기 내수동이 선생님이 말씀한 가구점 자리인가요?”
“지난주 숙제까지 다 해오셨나 봐요.”
“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옛날 생각나서 친구한테 오랜만에 전화도 하고….”

수요일 오전 10시, ‘서울노인복지센터’ 분관 탑골작은도서관에서 ‘종로의 풍경들’ 수업이 시작된다. 미리 도착해 교재와 과제물을 챙기는 어르신과 강사의 대화에서 이곳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분관에선 탑골작은도서관, 체력단련실, 상상교실, 영화교실, 바둑장기실, 요리연구소 6개 공간에서 여가 문화 및 교육 문화 등 어른신을 위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종로의 풍경들’ 프로그램은 ‘2021 서울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사진 속 ‘옛 종로 풍경’을 미술 작품으로 만들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역사를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서울시민이자 자신의 옛 사진 자료 제공이 가능한 지원자들 중 개별 인터뷰를 거쳐 선정된 5명이 2기 수강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 종로구 거주자나 회사, 사업장 등 종로구와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신청할 수 있다.

1960년대 종로에서 대학생활을 한 인연으로 수업에 지원했다는 문성자 어르신(78세)은 “처음엔 ‘종로의 풍경’이 뭔가 의아해 하며 들어왔는데,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 신이 나고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굉장히 기다려진다”며 “예전엔 종로 사거리까지 와서 전차를 타고 집에 갔는데, 화신백화점 자리도 너무 변하고 이렇게 발전될 줄은 몰랐다”고 지난 추억과 감흥을 전한다.

어르신들이 가져온 빛바랜 사진들은 오랜 시간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64년 봄날, 대학 친구들과 남산에서’라고 적어 낸 흑백 사진 속엔 눈부신 햇살보다 더 환한 젊음과 우정이 반짝인다. 1970년대에 취직을 위해 온 서울에서 연탄불이 꺼졌던 고생담과 공중화장실, 공중수도에 관한 기억들로 가득한 과제물에는 여백이 거의 없다. 1980년 당시 창경원 나들이 사진 속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선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사진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 뽑았기 때문에 거의 다 갖고 있다. 만약 사진이 한두 장이면 서울역사박물관 사진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찾아 작업을 도울 수 있다”며 이날 수업을 맡은 윤여준 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는 “어르신들이 가져온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 다들 모범생들이시라 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한다.

“오늘은 먼저 종로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문학작품들을 살펴볼 텐데요. 제가 드린 프린트를 한 분씩 읽어보겠습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지목받은 순서대로 낭독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구보는 집을 나와 천변 길을 광교로 향하여 걸어가며…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마스크를 착용한 어르신들이 큰 소리로 읽기가 쉽지 않지만, 시계탑과 다방, 모던보이 등이 나오는 예전의 종로를 추억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난 9월에 발행된 센터 소식지에는 1기 수강생들의 ‘종로의 풍경들’ 사진 콜라주 작품이 실렸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의상실을 하면서 바쁘게 살던 그때 그 시간이, 지금 생각하니 영화 속 한순간들이었다”는 내용의 작품에선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운 친구에 대한 추억을 담은 또 다른 작품에선 “친구야! 요즘 나는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 있는 줄 모를 때가 많다네, 곧 만나서 회포 풀어보자”라는 글도 감동을 준다.

“이번 수업에서 어르신들께서 이참에 앨범도 뒤져보고 얘기하니까 너무 좋았다고 하세요. 이렇게 과거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나아가실 수 있을지도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코로나로 우울해질 수 있는 이 시기를 조금 더 활기차게 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르신들을 향한 강사진의 바람이 약 6주 간의 수업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퇴직 후 2008년부터 다닌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있어 행복하다는 문성자 어르신은 “제가 지금 여기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은빛행복가게’ 일도 하고 있거든요. 나이 들어서도 대화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라고 말한다.

안국역 5번 출구에서 나오면 서울노인복지센터 벽면에 ‘해보거라 때는 없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언젠가부터 너무 익숙해진 ‘라떼는 말이야’에서 ‘해보거라 때는 없다’로 변화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멋진 도전을 응원한다.

내 손 안의 서울, <어르신들의 추억 담은 '종로의 풍경들' 수업 현장>, 이정민 시민기자

T.
02-363-2759
F.
02-363-2758
E.
official
@meaningo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