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소중한 이가 있나요?”_네이버 디자인프레스 ②

미닝오브는 2019년 청년이 힘을 모아 론칭한 기록 콘텐츠 회사다. 영화, 다큐멘터리, 잡지까지 형태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만들던 이들은 문득, ‘기록’이 모든 콘텐츠의 바탕이라고 느낀다. 조명이 비추지 않아도 면면히 이어온 삶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 삶을 찬찬히 엮고 싶었다. 널려 있어서 날아가 버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미닝오브가 탄생했다. 이들은 개인부터 마을, 도시에 이르는 대상을 산뜻한 눈으로 살피고 기록한다. 44년간 ‘이름 없는 갈비탕집’을 운영해 온 이영자 씨의 삶을 글과 영상으로 묶거나, 개인의 역사를 짚으며 종로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해 왔다. 미닝오브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단체이기 전에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청년 창업’ 하면 으레 떠오르는 방식과 상관없이, 미닝오브 멤버들은 저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사업을 일구고 있다. 2편에 걸친 긴 인터뷰에는 개별적 삶에 보내는 애정은 물론 흥미로운 청년 창업기가 담겨 있다. 미닝오브 장은진 총괄 디렉터, 정경희 디렉터가 참여했다.


 

3. 감수성 챙기면 따분하다고요?

Q. 실버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요. 그 세대를 위한 마음문답서를 개발했고, 지역의 역사를 그곳에 오래 머문 개인의 관점으로 다시 써 내려가기도 했죠.
— 은진 자서전 대필 작가로 일할 때, 주 고객층이 어르신이었기에 자연스레 실버 세대를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처음부터 실버 세대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어르신을 자주 뵙다 보니 우리가 노인의 삶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관심이 없었단 걸 느꼈어요.
당시 노인 혐오 문제가 정말 심각했는데요. 이렇게까지 혐오가 재생산되는 원인에는 ‘노인을 너무 모른다’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어요. 미디어에서 다루는 노인의 모습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혐오가 반영된 경우가 많았고요. 직접 만난 어르신들은 특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거든요.
— 경희 처음에는 저희 모두 어떤 시혜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어요. 모르는 사이 모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마치 어르신을 계몽하거나 깨우치게 해드려야 한다는 오만한 사명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일을 하다 보니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지금도 연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에요.

Q. 개인적 경험이지만, 제가 대화 나눴던 어르신들은 속에 있는 감정을 드러내기를 어색해하고 쑥스러워하셨어요. 감정이 움직이는 걸 유심히 바라볼 여유를 갖기 어려웠던 세대이기도 할 테고요. 실버 세대를 자주 만나면서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게 되었나요?
— 경희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기보다는 노력을 통해 얻었어요. 이번에 새로이 개발한 〈대화하며 기록하는 실버 세대를 위한 마음문답서〉라는 책자가 있는데요. 감정을 인지하고 이를 표현하는 일이 어색한 분들을 만나, 이분들이 천천히 자기감정을 인지하고 긍정할 수 있도록 만든 워크북이에요.
“요즘 어떠세요?”라는 포괄적 질문에 특히 대답하시기 어려워하시잖아요. 그래서 질문의 방식을 우회적이면서도 꼼꼼하고 세밀하게 구성했어요. 요즘 잠을 얼마나 잘 주무세요? 하룻동안 변화하는 감정을 체크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요. 감정은 일정하지 않아요. 낮에는 내내 괜찮다가 자려고 누우면 이상하게 울컥할 때도 있죠. 이런 부분에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 책이 〈마음문답서〉예요.

Q. 영상 콘텐츠 역시 인상적입니다. 서대문구 온라인 도보여행, 위드유 직장내성희롱피해자 법률동행지원사업 소개 영상 등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공 콘텐츠를 몰입감 높게 만들어냈어요.
— 은진 미닝오브가 가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새로운 톤 앤 매너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인권이란 걸 ‘생각을 제약하는 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건 하면 안 돼, 이런 건 꼭 넣어야 해, 하는 틀이요. 그래서 인권 감수성을 갖고 영상을 만든다고 하면, 틀에 갇혀 재미없는 것을 만들 거라고 짐작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감수성이 오히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연결되고, 색다른 기획의 밑바탕이 된다고 믿어요. 혐오와 차별적인 생각이야말로 고리타분하고 갑갑한 것이죠.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상대를 보면,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면을 낯선 방식으로 보게 돼요.
— 경희 새로운 시선으로 메시지를 색다르게 만드는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물론 영상을 영상답게 연출하는 전문성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죠.

4. 일하는 마음

Q. 다큐멘터리 〈징허게 이삐네〉를 기획 제작하고, 〈아옹다옹〉을 배급하는 등 영화와도 계속 접점을 만들고 있죠. 영화와 미닝오브는 어떤 방식으로 계속 만나게 될까요?
— 은진 작품과 콘텐츠는 또 다르니까요. 영상을 작품으로서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필요 없이 무엇이든 실험적으로 고안하고, 이를 작품성 있게 전달하는 일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 경희 꼭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생각하게 돼요. 익숙한 사고 회로, 익숙한 도구 같다고 할까요? 이 때문에 책을 만들 때도 영화 만들 듯 하게 돼요. 이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걸 이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생각하죠. 인터뷰 글 사이에 나오는 사진 및 시각 자료를 인서트처럼 생각하기도 하고요. 새로운 예술 형식에 도전할 때마다 영화라는 기반 위에서 사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닝오브와 영영의 색깔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영화 작업을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예요.

Q. 로고부터 홈페이지, 제작물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쓴다고 느껴요.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나요?
— 경희 기록, 그리고 자서전 하면 벌써부터 흥미가 뚝 떨어지잖아요. 고리타분한 콘텐츠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고요. 이를 탈피하기 위해 디자인에 많이 신경 썼어요. 또 비주얼라이징에 관심이 깊다 보니 이미지적 접근에 익숙해요. 그 중요성을 알고 있기도 하고요.
— 은진 그래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자주 협업했어요. 이응셋의 이예연 디자이너, 일상의실천 스튜디오, 샌드위치 프레스의 주혜린 디자이너와 일했고 내부에는 이리을 디자이너가 계셨어요. 모두 미닝오브 브랜딩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고민해 주셨습니다.

Q. 콘텐츠 제작자로서 잊지 않으려 하는 생각이 궁금해져요.
— 은진 요즘 흔히 콘텐츠 제작자를 뜻하는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는 창조하는 사람이잖아요. 창조란 쉽게 이뤄져서는 안 되는 영역 같아요. 콘텐츠 제작자는 스스로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발견하는 사람’으로서 태도를 먼저 갖춰야 해요. 콘텐츠 제작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담아내고, 새로운 시선으로 배치하는 역할을 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그 태도를 갖추려 애쓰는 중이에요.
실은 요사이 계속해서 자의식을 죽이기 위해 노력해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자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흔하게 들리는 때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인데요. 제작자는 비대해지는 자의식을 좀 줄여나가야 한다고 느껴요. 자의식을 줄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들어올 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고가 더 확장될 수 있다고 믿어요. 이 생각은 특히 기록 작업을 할 때 도움을 줘요.
— 경희 세상과 사람을 믿기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저히 믿기 힘든 일들이 매일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어느 순간 저도 모르는 사이 무감해지기를 연습한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너무 크게 받아들이면 견딜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문득 그 습관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요. 이대로 모든 게 괜찮아져도 괜찮은 걸까? 모든 게 괜찮은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괜찮다고 애써 믿기보다, 괜찮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기르자고 마음먹었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제겐 맷집을 기르는 과정이에요. 사람을 진실하게 만나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기록하고, 그가 제 몫의 삶을 감당하는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요. 더 이상 무감해지지 말아야겠다, 더는 감각을 녹슬어 버리게 하지 말아야겠다 되뇌어요.

Q. 어떤 일을 준비 중이에요? 미닝오브가 품은 꿈도 들려주세요.
— 경희 가깝게는 지역에 내려가 기록하는 일을 해보려고 해요. 항상 지역민의 삶에 관심이 많았어요. 〈징허게 이삐네〉와 〈아옹다옹〉 모두 지역 공동체 이야기죠. 도시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신선한 삶의 방식을 찾고 싶었어요.
— 은진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놀라울 정도로 무궁무진한 삶이 도처에 있는데, 우리는 지금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반문할 수 있도록.

[출처] “기록하고 싶은 소중한 이가 있나요?”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 ‘미닝오브’ ② | 글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김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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