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읽어본 게 언제였지? 자동차로 유명한 대기업 총수의 자서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대선을 노리던 한 정치인의 자서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잡스나 오프라 윈프리 정도는 되어야 자서전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가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쓰는 자서전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영웅담처럼 가공된 그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 미닝오브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보통의 당신에 주목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고, 사소한 흔적에 집중해 당신의 서사를 아카이빙한다.
이런 미닝오브가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했다.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차별화된 기록물을 만든다는 미닝오브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서울혁신파크는 입주단체와 함께 각 단체가 꿈꾸는 미래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해볼까?>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미닝오브 사무실에서 장은진, 정경희 대표를 만나 보았다.
Q. 미닝오브는 어떤 단체인가요?
뭐라고 소개해야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기록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비주얼라이징 기록을 하고 있죠. 주된 콘텐츠는 영상이지만 책, 전시 등을 통해 기록을 비주얼화해서 많은 분들이 기록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합니다.
미닝오브는 기록을 기반으로 한 극영화, 다큐멘터리,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고 배급한다. 사회 주변의 목소리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인문 워크숍 및 연구 모임도 개최한다. 특히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만나 사진과 글로 풀어내는 기록 작업이 눈에 띈다.
Q.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미닝오브 창업 멤버는 정경희 공동대표를 비롯해서 세 명인데요. (미닝오브는 장은진 총괄디렉터, 정경희 디렉터, 안정연 디렉터가 공동 창업했다) 셋 다 원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에 매료되기 시작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기록에 집중하게 되었죠. 보통 영화를 하게 되면 제작자가 출연자를 선택하고 관객에게 출연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택하잖아요. 저희는 진짜 보통의 사람들, 스스로를 기록하기 어렵고 혼자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을 위한 기록을 해보자는 다짐에서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세 분은 영화 작업 하다 만나신 건가요?
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만났어요. 저희 학교 커뮤니티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만나보자는 글이 올라왔었거든요. 원래 저희는 세컨드라고 하는 시네 페미니즘 매거진을 만드는 팀이었어요. 굉장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다들 영화 전공을 하신 건가요?) 아뇨. 저는 중어를 전공하고 있고 다른 멤버들도 인문학도가 많아요. (대표님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이전까지는 영상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해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들을 위한 교육 기관, 유스보이스라는 곳에서 처음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요. 그때 계셨던 선배들과 작업을 이어 왔어요.
Q. 삶을 기록한다고 하면 보통 자서전을 생각하시는데요. 미닝오브의 작업이 자서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직접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있어요. 저는 자서전 대필 작가로 일한 이력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한계를 느꼈죠. 가장 큰 아쉬운 점은 자서전이 영웅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거였어요. 그러다보니 자서전이 발간되었을 때 정작 본인 말고는 아무도 읽지를 않는 거예요. 출간 기념회하면서 책을 나눠 드리면 책은 한켠에 잔뜩 쌓여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죠.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작업하고 있던 선생님께 선물로 영상을 만들어 드렸어요. 선생님이 책에서 다 못하신 이야기를 담아서요. 그리고 그 영상을 출간 기념회 때 틀었는데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보시더라고요. 텍스트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실제 목소리로 듣는 게 달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큰 감명을 받았죠. 책도 이런 식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어떤 식으로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소설처럼 서사를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한 사람의 인생을 아카이빙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예전 자서전이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소설화하는 방식으로 제공되었다면, 저희는 흔적을 모아서 그 생생한 느낌을 살리려고 해요. 인터뷰도 말투나 토씨를 살려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쓰고요. 주변에 남아 있는 일상의 흔적들, 노트나 핸드폰 속 기록 같은 것들을 모아서 사진으로 비주얼라이징하고 있어요.
Q. 작업을 통해 만났던 사람 중에 인상 깊었던 분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네. 자녀분들의 의뢰를 통해 만났던 한 어머님이 기억나는데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 50년 동안 자녀들을 키우셨다고 해요. 자녀분들이 어머님이 속에 있는 말을 하시는 타입이 아니라서, 어머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계신지 궁금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어머님을 만나 뵈니까 정말 산 같은 분이신 거예요. 우직하시다고 할까요. 남편분 돌아가셨을 때를 구술하실 때 그 장면을 그림 그리듯이 잘 설명해주셨는데,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는 이야기를 안 해주시더라고요. 어땠냐고 여쭤보면 ‘어떠긴 어때. 그냥 살아야지’라고 대답하신다던가. 마음이 슬프지는 않았냐고 여쭈어보면 ‘슬펐지’이러고 끝난다던가요. 이제는 여쭤볼 때 ‘남편분이 돌아가셨을 때 감정이 어떠셨느냐?’라고 물어도 의미 있는 대답이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 걸 알아서, ‘꿈에서 남편분을 만나신 적이 있냐?’라고 물어봐요. 그러고 나서 ‘어떤 표정이었어요?’라거나 ‘무슨 말씀 나누셨어요?’라고 이어 묻죠. 그제서야 감정 표현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의 질문이 너무 젊은 세대의 언어를 사용한 질문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닝오브의 기록 작업을 수식하는 주요 키워드는 ‘편견 없이’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업적과 인지도에 관계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기록 작업의 의뢰를 맡기는 개인 중에는 부모의 이야기를 기록해달라는 자녀들이 많다. 그러나 폭풍 같은 역사를 통과해 온 부모 세대와, 풍요와 정체 속에서 분투하는 청년 세대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미닝오브는 이런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Q. 노인과 청년 사이에 언어가 달라 기록 과정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으세요?
감정을 말씀하신다거나 가치 지향적 질문에 대한 이해가 다르세요. 예를 들어 한 번은 손녀분 의뢰로 50년 된 갈비탕집 주인 할머니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는데요. 갈비탕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냐고 여쭈어 보면 잘 대답을 안 하세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하시고요. 그래서 질문의도가 있을 때는 거기에 닿기까지 다른 질문들을 준비해 가려고 해요.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Q. 언제 이런 일들이 의미 있다고 느끼시나요?
일을 할 때마다 이 작업은 꼭 계속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게 되어요. 평범한 보통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정말 필요하다고, 꼭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분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가 닿아야 한다고 믿고요.
Q. 이런 작업을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들은 없나요?
생각보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걸 질색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시 설득해야 할 때가 있죠. 의뢰인들이 보통 자녀분들이신데, 자녀분들이랑 합작해서 설득해야 할 때도 있어요. 일단 한 번 찾아뵙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는 잘 진행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왜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의미도 모르겠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찾아 뵈면 면전에서 내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들어와 보라고 하시죠.
Q. 자녀분들이 의뢰한 어른들 삶의 이야기라면, 역사적으로 굉장히 격동이 많았던 때잖아요. 개인의 역사를 통해 사회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늘 그렇죠. 1970년대에서 1980년대를 몸소 느끼고 관통하신 분들이 많잖아요. 말씀해주시는 내용을 듣다가 충격을 받을 때도 있어요. 얼마전에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소설 내용에 개성에서 피난 오는 상황이 나오거든요. 그 소설 읽으면서 제가 기록했던 선생님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실제로 개성에서 피난 오신 분도 계셨고, 625전쟁이 났을 때 인민군과 함께 지냈던 분도 있었거든요. 폭격 맞은 이야기, 인민군 밥 해준 이야기 같은 걸 들었죠.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전쟁 후에 아이들이 뼈다귀 위에서 공기놀이를 했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 그런 말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은 거죠.
Q. 이런 작업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고민 많이 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이런 작업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효심이 깊다’라거나 ‘착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저희는 어떤 아름다운 생각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호기심, 알고 싶음에서 시작했어요. 이해라는 게 곧 용서는 아니지만요. 저는 가끔 윗세대가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어쩌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데요. 그게 이 작업을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이 작업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초석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청년세대와 부모님 세대뿐 아니라 부모님 세대와 조부모님 세대도 골이 깊잖아요.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고 맞닿을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사회는 이런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할 거라며 가족의 바운더리로 문제를 밀어 넣고요. 이해와 사랑이 오기 전에는 일단 이 사람들이 각자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자료가 필요한 것 같아요. 모르는 채로 있을 수는 없죠. 그래서 저희 작업은 아주 기본적인 작업이에요.
Q.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가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은 책을 만들어 드리는 작업만 런칭이 된 상태예요. 전체 비용을 지불하시면 저희가 인터뷰팀을 꾸려서 찾아 뵙고, 대신 기록을 해 드리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Q. 미닝오브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희는 최근에 영영이라는 자서전 브랜드를 런칭했어요. 이걸 확장하는 게 계획입니다. 이 브랜드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스스로를 기록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으면 해요. 지금은 단가가 어쩔 수 없이 높게 책정된 상태인데요. 계속 단가를 조절하고 보통 사람들도 작업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시도를 계속 하고 있어요.
Q.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이 일상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기록 관련 활동이 있다면 뭘까요?
질문을 던져보자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어보자고요. 세대가 다르고 가치가 달라서 물어보기 어려웠던 질문을 시작해 보자고요. 하루에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정도라도요. 주변 가족들에게 먼저요. 다른 세대를 만나는 게 지금으로서는 학교, 직장, 가족 정도니까요. 정리하자면 가족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한 가지씩 질문을 던져보기. 정말 간단한 거라도 좋을 것 같아요. 엄마, 뭐 먹고싶어? 할머니, 지금 뭐하세요? 이런 질문이 많이 던져본 적 없는 질문이더라고요.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간단하고 일상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고 폭 넓은 질문으로 확장해가는 걸 목표로 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미닝오브 홈페이지에 가면 이런 문구가 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은 닫힌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대해 영원히 오해하는 자가 된다.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때만 그것에 대해서 최대한 가깝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 질문하기. “
[출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은 닫힌다_해볼까! 미닝오브와 함께 기록하기 2편|작성자 서울혁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