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사셨을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지금의 시각으로 어르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사용하는 언어의 형태부터 말하는 방식까지 이들 간에는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6.25를 전후해 태어난 노인들은 지금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에는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다른 관념과 표현방식으로 소통한다.
주류보다 훨씬 가치 있는 비주류의 일생을 ‘기록’하다
미닝오브 장은진·정경희 공동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자리에서 “기록은 본능”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록물’이라고 하면 영웅의 일대기를 담아낸 자서전이나 기관의 기록물을 생각하기 쉽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혹은 그 주변부에 대해 끊임없이 기록해왔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자신들만의 표현방식으로 기록을 해왔다.
장은진 대표는 배꽃나래 감독의 다큐멘터리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에 나오는 할머니의 기릉지(문신)를 예로 들었다. 기릉지란 살갗에 먹물을 먹인 실을 꿰는 방식으로 문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장 대표는 다큐멘터리에서 글을 모르던 할머니들이 친한 친구와의 긴밀한 관계를 문신이라는 방법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보고,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는 지극히 본능적이라고 느꼈고, 그 방식 또한 글을 쓰고 정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두 대표 역시 ‘기록’에 진심이다. 이들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기록’을 끊임없이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연출가를 지망하며 참여한 스터디 모임에서 처음 만난 두 대표는 현실 속 다양한 군상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졌다고 한다.
이들의 첫 기록물은 영화잡지였다. 2016년 ‘세컨드’라는 여성영화 관련 잡지를 창간함으로써 당시 비주류에 속했던 ‘여성 캐릭터’에 대해 기록했다. 잡지를 통해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연구하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그려낼 방법을 제시하며 미래를 조망했다.
하지만, 영화라는 작업만으로 생업을 이어갈 수는 없어 정경희 대표는 문화기획 관련 회사에서 일했고, 장은진 대표는 작가로 활동했다. 특히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라는 강연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할 당시 15분 이내에 평범한 사람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지금의 작업에 상당한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이후 두 대표는 자서전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며, ‘보통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사회 주변부의 목소리를 담아 의미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이들은 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상품화하면 비즈니스 모델로서 가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2019년 4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예비창업패키지를 통해 회사를 설립했고, 같은 해 10월 법인사업자로 등록했다.
기록을 하면서, 자신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 보며 보람
장은진·정경희 공동대표가 회사의 정체성을 ‘기록’으로 가져가며 처음 자서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타깃층을 설정하는 단계였다고 한다.
“기록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세대는 2030인데, 문제는 이들이 구매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기록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거죠. 결국 부모 세대에 저희를 소개해 그들이 구매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이어지게 되더라고요. MZ세대가 안내자 역할을 하면, X세대인 부모가 돈을 내고, 이야기의 주체는 조부모 세대가 되는 겁니다.”
특히 자서전의 성격상 가족이 함께 만드는 작업이 많다 보니,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2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전 세대의 이야기가 통합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업 의도와는 다르게 세대 갈등을 풀어내고, 세대 간의 다리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두 대표가 발견한 세대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통’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초창기 두 대표가 어르신을 인터뷰할 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언제 아프셨어요?”하고 물어보면, “우리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지”라는 식으로 어르신의 시각은 자신보다 남에게 더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감정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슬펐다’,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고생했지 뭐’처럼 단편적이다.
이는 경험의 차이라고 정경희 대표는 말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소개하거나, 특정한 시절에 있었던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경험이 많은 것에 비해, 어르신은 그러지 못해 ‘의미’에 대한 답을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청계천에서 갈비탕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인터뷰할 때였어요.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물었더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어르신에게 접근할 때는 우리 세대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답니다. 다른 방식의 소통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하게 된 것이 ‘마음 문답서’라는 워크북이다. 심리상담가의 조언을 받아 1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만든 이 책은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는 학습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음 문답서는 ▲인생편 ▲일상편 ▲안내자를 위한 가이드북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왜 인터뷰를 시작하는지 ▲대화하면서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새로운 호칭 정하기 ▲자신을 주어로 이야기할 것을 약속하기 등 어르신이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질문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어르신을 위해 날씨나 표정 같은 그림에 빗대어 말하는 코너도 있다. 또한, 안전한 대화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비밀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서전을 낸 사람은 신기하게도 자신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장은진·정경희 대표가 자서전 작업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 역시 이런 당사자의 모습을 바라볼 때다.
“현대사회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기회복을 거치고, 치유하며 행복해하더라고요.”
개인 기록부터 지역사회 얼굴 담아내는 ‘기록 전문기업’
미닝오브는 개인의 삶을 기록하는 자서전 사업도 하고 있지만, 영등포구·은평구·성북구 등 지자체와 문화재단, 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기관을 기록하는 일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멈춰 있던 서대문구의 문화행사 중 하나인 도보여행을 영상물로 제작했다. ‘홍릉,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중에서는 홍릉이라는 공간의 길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도 했다. 그중 두 대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작년에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진행한 ‘종로의 풍경들’이라다. 센터에서 어르신이 진행한 예술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기록물이면서 어르신의 활동이 담긴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종로의 일대기까지 담아낸 종합 기록물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이 프로젝트가 미닝오브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준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어르신이 가져온 사진과 글,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지니고 있던 종로에서의 추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전시할 때 영상물을 보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라며, 눈물을 흘리던 어르신을 보며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사람과 도시, 지역의 삶을 기록하는 미닝오브는 설립 이후 계속 성장 중이다. 2019년 900만원의 매출로 시작한 이래 다음 해는 790% 매출이 뛰어 올랐고, 2021년에는 전년대비 270% 성장했다.
두 대표는 ‘기록’은 나를 깨우치고, 남을 이해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의 이야기를 집대성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가치 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닝오브는 회사명처럼 ‘○의 의미를 채워가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외주의 시스템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기록하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 것입니다. 그 형식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유튜브나 소설의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우리 할머니·우리 동네’ 우리네 이야기 보실래요 | 글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