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의 밤

Year Running Time Ratio Color/B&W Genre
기획 연출 제작 촬영 음악

왜군으로부터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수군이 주둔한, 국경의 최전방이었던 수영. 왜의 침략을 받기 쉬운 위치에 있었던 이곳 수영은 몇 백년간 전운이 감도는 불길한 땅으로 여겨졌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부임 받아 온 부사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더니) 왜 곡소리가 들리지 않는가?”라고 물었더니 “곡을 해줄 수 있는 가족이 모두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참혹하게 죽을수록 더욱 강한 귀가 되어 땅을 맴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무속인들은 강력한 신의 기운을 받고자 일부러라도 이 땅을 찾는다. 참혹한 과거를 가진 수영의 신들은 여기 어디에나 있다. 홍건적과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켰지만 목이 베어 처형당한 최영 장군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 모셔져 있고, 일제가 만든 광산에서 말라 죽은 사람들은 그 광산 속 동굴 암자에서 마을을 굽어 살핀다.

이 땅이 지닌 참혹함이 도리어 이곳을 지킨다. 비탄이 있는 곳인 만큼, 간절한 기도를 받는다. 그 기도와 염원이 쌓인 땅이어서 일까. 수영에는 제의적 풍경이 유독 많이 남아 있다. 수군들이 바다로 떠나기 전 살아 돌아오기를 빌었다던 400년 된 곰솔나무와, 할머니신이 있어 사람들을 보살폈다는 500년 된 푸조나무는 작은 공원 안에 모셔져 여전히 사람들의 기도를 받는다. 무성히 자란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할매신당과 우물터가 있어, 누군가는 그곳에 기도와 보시를 올린다. 땅의 안녕과 염원의 노래를 부르는 민속놀이도 끊임없이 전승되어 수영의 곳곳에 울려 퍼진다.

이곳에서 우리 조상들은 가장 두려운 때에 노래를 불렀다. 강강수월래, 쾌지나칭칭나네. 이 모든 노랫말들은 바다를 건너 죽음을 가지고 오는 왜군들이 물러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이 가삿말을 흥겨운 가락에 붙여 부르고,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 누구의 지킴도 받지 못했지만, 아침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기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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