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순 선생님을 만나다

최남순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만나 뵌지 꼬박 1년 만에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우리를 할퀴고 지나가기 전, 조금씩 바람이 차가워지는 19년도 겨울 문턱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었죠. 선생님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았던 것은,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한 집과, 손때 묻은 성경책이 천정에 닿을 듯 쌓여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첫 방문은 저희 항상 긴장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기록해야 한다는 중대한 임무에 따른 부담감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저희 기록자들은 의뢰인 분들을 만나 뵙기 전, 사전 인터뷰와 자료 등을 통해 의뢰인의 세계관을 그려보는 작업을 합니다. 하나하나 가벼이 볼 수 없기에, 사전 인터뷰라는 짧은 대화 속에서 지나쳐간 의뢰인의 말투, 단어, 문장 등을 종합하여 대략적 윤곽을 잡아 심층 질문지를 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로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앞에 앉은 의뢰인을 ‘이해한다’, ‘안다’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위해 대략적인 윤곽을 그리면서도, 저희는 언제나 의뢰인 분들을 ‘미지의 인물’로 대해야 합니다.

‘미지의 인물’에 대한 ‘기록’은 저희가 의뢰인 분들의 현관 문턱을 넘어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바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첫 눈에 담기는 풍경을 자세히 새겨넣습니다. 의뢰인 분들의 공간을 통해 받는 첫 인상이, 곧 그 분을 조금 더 다정히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열쇠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갈한 집과 성경책이 주는 인상과 더불어, 선생님의 공간에서 하나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집 어디에서나 가족들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소파 위에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을 포함하여, 문틈의 작은 공간, 선생님의 침대 옆, 부엌, 탁자 위에도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들을 통해 집안 곳곳 어디에나 선생님의 사랑이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희는 여기에서부터,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은 온유한 사랑을 품고 계시면서, 굉장히 직관적이면서도 통찰 있는 언어를 사용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억지로 사는 것이 아니오” 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는, ‘최남순’이라는 한 사람에게 쌓여 있는 깊은 세월을 살짝 엿본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메모 속에서, 일기 속에서, 성경 기도제목 속에서 ‘억지로 살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살지 않는다, 라는 문장의 어떤 부분이 선생님의 마음을 건드렸을까. 그 과정을 생각하고 되짚어보는 작업 속에서, 고난과 상처를 대하는 선생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난에 떠밀려서 살지 않는 삶. 그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발견하는 삶을 어떻게 찾아내셨을지. 아직 작은 상처에도 쉽게 휩쓸리는 저희로서는 가늠해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선생님께는 수많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걷는 수행자가 지닐 법한 면모를 지니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너무나 고된 시집살이에 죽음까지 생각했던 시기를 말씀하실 때에도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으셨죠.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어야했던 자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감정을 지혜롭게 다듬으실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첩에는, 사랑과 온유에 대한 성경 구절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설교 말씀이 정갈하게 메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함께 적어넣으셨죠.

‘아베스와 같은 믿음으로 인도하시옵소소
권세에 축복주시옵소소
축복이 임하시기을 바람니다’

자녀분들께서 어머니에 대해 묻는 저희의 질문에 대답해주신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단 한 번도 무엇에 대해 불평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자녀들에게 큰 목소리로 호통 한 번 쳐보신 적이 없는 분이시라고요. 저희는 선생님의 그 힘을 단순히 ‘모정(母情)’이라고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억지로 살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한 사람이, 오랜 시간을 통해 결국 얻어낸 온유함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최근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늦게나마 전해들었습니다. 평생의 삶을 정리하시고, 남은 시간에 대한 기약과 바람을 말씀하시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고픈 마음들을 늦지 않게 전하는 데 저희가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책과 영상이 나왔을 때, 정말 책 같아서 기쁘다고 계속 생애기록집을 어루만지시는 선생님의 모습과 영상을 통해 재현되는 고유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시던 가족 분들의 모습이 저희에게 주시는 최고의 피드백이었습니다. 왜 이런걸 찍어가느냐, 의아하게 물어보셨던 손때 묻은 물건들과 메모들이 들어간 것을 보시고, “이렇게 모여 있으니 무언가 대단한 걸 가진 사람 같다.”라고 말씀하셨죠. 선생님의 빛나는 발자취를 담은 이 책과 필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펼쳐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저희 또한, 삶이 흔들릴 때마다, 억지로 살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

항상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미닝오브 정경희, 장은진, 김본희, 안정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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